지맥종주/사자지맥

사자지맥 3구간 골티재에서 신리삼거리

SANMA 2026. 2. 1. 12:01

 

개요

지난번에 사자지맥을 완주하려다 눈 폭설예보도 있고 발목도 아파 포기하고 왔던 사자지맥을 마무리하거 간다,  창원에서  저녁 6시반에 출발하여 광양, 벌교, 보성을 거쳐 장흥군 대덕읍 신리마을 신리보건소에 주차하고 차박을 한다. 

다음날 아침에 택시가 잡히지않아 자차로 골치재로 이동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가면 편할듯하여 임도를 따라 가지만 접속도길고 잡목도 많아 지맥능선보다 더 힘든듯하다.   313.3m봉에  접속하여 지맥을 이어간다. 편백숲을 지나  임도에 내려서고  잠시 임도를 따르다 좌측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잡목과 산죽의 싸움이 엄청나다,  다시 임도에 내려서 임도따라 진행하다 다시 좌측숲으로 들어서는데 지난구간보다 산죽에 잡목이 석여 있어 힘든 산행이 된다.  무명봉인 460m봉까지 너무 힘이 들고  천관산 갈림봉인 양암봉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내려간는데 경사가 무척 급하다. 가지재에 도착하여 459.6m봉을 오르는데 등로는 아예없고 경사가 엄청심한 된비알과 잡목등로 인하여 너무 힘이 든다.  459.6m봉을 다녀와 우측 안부로 내려서고 안부에서 천태산등로가 암청 심하다,  이제는 잡목과 산죽은 기본이고 ,,,,,   천태산에서 좌측으로 험한 바윗길을 내려가지만 등로가 정비되어 있어 한결 편하다.  정수사 갈림길에서 좋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서고  436m봉까지는  그런데로 갈만하고 493.4m봉 오름길이 잡목과 산죽으로 험악하다. 

493,4m봉을 조금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여기도 너무 험악하다.  임도를 지나 기잿재에 내려서고  벌목지인 급한 된비알을 올라  무명봉을 넘어서니 한창 벌목지대를 지난다.  천관산과 양암봉이 조망되고  부곡산에 된비알을 거쳐 도착한다.  신지 21번 삼각점이 있고 지잿재부터는 산죽은 없지만 등로가 무척 가파르고 잡목이 많은 등로가 계속된다.  392,8m봉을 지나 조망처에서 천관산을 조망하고 공성산에 도착한다.  309.1m봉을 지나 내려서니 등로가 유순해지고 좀 좋아진다.  91.3m봉을 지나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잠시 50여m알바를 하고 등로도 없는 곳을 지나 신리임도에 내려서 신리삼거리에서 사자지맥 3구간을 마무리한다. 

 

사자지맥 3구간  골치재에서 신리삼거리까지 험난한 산행

일시    :   2026년  01월  30일

날씨    :    맑음 

소재지  :   전남 장흥군 관산읍, 대덕읍, 강진군 칠량읍일대 

행정  :   창원(1월 29일 18:30)  ~  신리삼거리(장흥군 대덕읍 신리) ~ 1박(신리보건소주차장 차박) ~ 골치재 ~  임도 ~ 313.3m봉

  양암봉(469.2m, 09:06) ~ 가지재(09:48)  ~  459.6m봉(10:09) ~ 용문마을 갈림길삼거리(10:28) ~ 천태산(545m, 11:02) ~ 

  493.4m봉(12:04) ~ 임도 ~ 기잿재(12:38) ~ 부곡산(425m삼각점봉, 13:41) ~ 공성산(367.2m, 14:53) ~ 신리삼거리(16:03)

산행거리    :    gps 17.04km(오룩스맵기준)   누적거리  :  30.8km + 17.04km = 47.84km  

산행시간    :    8시간 23분 

동행     :    나홀로 

트랙 

 

사진및 일지

신리보건소에서 택시를 호출하지만  아무리해도 되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자차로 골치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2구간당시에 초당연구원에서 골치재까지의 못한 산행이 아쉽지만 초당연구원에서 시작하면 산행이 어려울것 같아 포기하고 골치재에서 시작한다 

천관산 휴양림가는 임도에 주차를 하고    임도따라 가면  천관산 휴양림을 가고 대형차량은 가지 못한다 

골치재는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부평리와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골치재의 유래는  깊은 골짜기를 통과하여 넘어가는 재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골재라고도 한다.

골치재의 높이는 160m이며,  장흥군과 강진군을 남북으로 경계 짓는 사자산 지맥인 부용산~깃대봉~양암봉~천태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깃대봉과 양암봉 사이 안부에 해당하는 산이다. 사자산 지맥의 산줄기는 지질적으로 백악기 부용산 분출암류와 백악기 미문상 화강암류인 천관산 화강암질이 접속하는 지질 구조 경계선이기도 하다. 골치재는 서쪽 강진만으로 유입하는 칠량천의 큰 지류인 명주천과 동쪽 관산읍의 고읍천의 물줄기를 가르는 분수계에 해당한다.

골치재는 관산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국도 제23호와 연결된다. 관산읍과 강진군 칠량면을 잇는 동서 횡단 교통로이며, 지방도 제827호가 동서 방향으로 골치재를 넘는다. 골치재는 기다란 강진반도의 허리 부분을 넘어가는 지름길로 득량만과 강진만을 연결한다. 골치재 정상부에서 천관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산길인 비포장도로가 연결된다.

입구를 막아놓아 좌측으로 들어선다 

여기서 좌측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임도를 따르는게 편할듯하여 임도를 따른다 

임도를 따르다 우측으로 U자형을 돌아가는 부근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313,3m봉오름길도 잡목이 장난이 아니다,  골치재에서 지맥따라 오르는 편이 더 나았을듯하다. 

313.3m봉에 도착하여 지맥을 이어간다. 

준희님의 산패가 반겨준다. 

우측으로 편백숲이 있고 임도가 보인다. 

임도에 내려서는데,,,   차라리 여기까지 임도따라올걸 하는 생각도 들고   나이가 드니 자꾸만 편해지려는 마음이 앞서나 보다 

임도따라 진행하다 좌측능선으로 들어서니 

산죽이 막아서고 잡목까지 간간히 엉켜있다 

가야할 마루금이고 우측으로 양암봉이 살풋이 보인다. 

임도에 내려서 진행하고 

영암봉의 전위봉인 460m무명봉이 보인다 

좌측능선으로 들어서는데 산죽이 막아선다 

무시무시한 등로   산죽과 잡목이 엉켜있다.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가 보인다 ,   오늘은 날씨가 흐려 조망이 별로다.   

좌측으로 천관산이 조망되고 

가야할 능선

460m무명봉

이정목이 있는데 너무 오래 관리가 안되어 글씨도 지눠지고 쓰러지려한다.

바위 조망처에서 좌측으로 천관산이 조망되고 

“장흥의 천관산(天冠山)은 돌 모양이 기이하고 훌륭하며, 항상 산 위에 붉은 구름과 흰 구름이 떠 있다”라고 기록된 천관산은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과 관산읍에 자리한 산이다.

천관산의 연대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왜적이 침입했음을 알리기 위해 봉홧불을 올렸던 곳이다. 고려 의종 3년(1149)에 처음 쌓아서 개축해오다가 왜적이 침입했을 때 장흥의 억불산(510미터) 및 병영(兵營)에 있는 수인산(561.3미터)과 교신을 했던 천관산의 봉수대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단석만 남았던 것을 1986년 3월에야 동서 7.9미터, 남북 6.6미터 그리고 높이 2.35미터로 쌓아올렸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천관산의 이름과 산세에 대하여 “천관산은 예로부터 천풍산 또는 지제산으로 불렸는데 산세가 몹시 험하여 가끔 흰 연기와 같은 기운이 서린다”라고 하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존재(存齋) 위백규는 그가 지은 『지제지(支提志)』에서 “천관산은 크기에서는 두류산, 무등산에 뒤지지만 신성하고 특이한 면에서는 그들보다 앞서며 금강산, 묘향산을 거쳐서 온 사람도 천관산에 오르면 이런 산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한다”라고 기록하였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많고 정상 부근에 바위들이 비죽비죽 솟아 있는데 그 바위들이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같이 보여서 천관산이라 부른다. 이 산을 대덕이나 관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큰 산이라고 부르는데, “큰 산에 비 몰려온다”라거나 “큰 산으로 소풍 간다” 또는 “큰 산이 울었다”라고 말한다. 산의 서남쪽에 위치한 대덕 사람들과 산의 동쪽에 위치한 관산 사람들은 이 산의 정기를 독점해서 누리고자 ‘네 산이다, 내 산이다’ 하고 다툼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관산만 해도 1936년까지 고읍면이었던 것을 천관산에서 ‘천’ 자만 빼버린 채 관산으로 개명하였다.

특히 날이 가물어 기우제를 올릴 때면 심한 편싸움이 벌어지는데 고을마다 서로 번갈아 기우제를 지내고는 산중의 분묘를 파헤쳤다. 그 이유는 큰 산에 누군가가 묘를 잘못 써서 화기를 돋워 수액을 말려버린 탓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내장산, 월출산, 변산, 두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으로 불리는 천관산은 봄의 진달래와 가을의 억새 숲이 절경을 이루기 때문에 해마다 가을철에는 천관산 억새 축제가 열린다.

이 큰 산에는 엄청난 규모의 큰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절이 대덕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탑산사일 것이라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천관사가 큰절이라는 말도 전해온다. 이렇듯 전설 속의 큰절(탑산사)이 실재했음을 알려주는 보물 한 점이 대흥사 표충사의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이라 이름 붙여진 이 종은 임진왜란 때 절이 불타 없어진 뒤에 해남의 대흥사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다. 탑산사 동종은 종신에 새겨진 문양이나 명문 그리고 기법으로 보아 고려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관산에는 봉수대가 남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관산면 방향

양암봉에 도착한다    양암봉에서 좌측으로 천관산가는 등로가 있으나 이용하는 사람은 없을듯하다 

양암봉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 농안리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469.2m이다. 

가야할 마루금   저멀리 천태산이 보이고 

암봉을 우회하고 

대덕읍 연정리 연지저수지가 보이고  그뒤 바다건너 완도군 약산면이 보인다

급한 내림길을 거쳐 임도인듯한 수렛길에 내려선다 

잡목과 가시나무가 많은 가지재에 도착하고 

반바지님의 코팅지가 걸려있다. 

가지재에서  459.6m봉을 오르는중에 준.희님의 격려를 받고 

459.6m봉을 오르는데는 엄청난 된비알과 잡목의 방해를  받고 올라야 한다. 

조망처에서 바라본 천태산 

지나온 마루금,  좌측 골치재에서 좌측 양암봉, 양암봉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마루금 

좌측으로 부용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억불산이 보인다 

지맥에서 벗어나있는 459.6m봉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우측으로 급하게 떨어진다 

가야할 천태산이 보이고 

안부에서 용문마을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 좌측으로 오른다 

엄청심하게  잡목길을 오르고 

잡목과심한 산죽길을 헤치고 오른다 

바위를 오르고 

암봉에서 바라본 강진군 칠량면 명주리와 명주저수지 

암봉에서 바라본 천관산(우측)과 양암봉(좌측), 양암봉에서의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산이 보이고 저 멀리 호남정맥의 사자산이 보인다 

부용산과 골치재도 

저멀리 땅끝기맥도 

천태산(545m)에 도착한다 

천태산(天台山) 은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연정리와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천관산과 함께 높은 산지에 속한다. 낮은 해안 지대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인식되어 높고 크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5만 분의 1 지형도상에는 천태산(天太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천태산은 장흥군 천관산 남서쪽에 자리한 산이며, 장흥군 대덕읍의 서쪽에서 강진군과 경계를 이룬다. 천관산~양암봉~천태산으로 연결되는 호남정맥 주맥과 사자산에서 분기되는 사자산 지맥의 하나이며, 천관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대덕읍 북서쪽에서 천관산과 함께 북서풍을 막아 주며, 따뜻한 난대성 기후가 나타나므로 동백나무 등 다양한 난대림이 우거진 숲이 형성되어 있다. 남해의 득량만으로 유입하는 장흥군 대덕읍의 대덕천과 강진만으로 유입하는 대구천의 분수령을 이루면서 장흥군 강진반도의 끝자락 산지를 이룬다. 천태산 정상 표석 주변은 시야가 잡목으로 우거져 있지만, 한쪽은 급애가 나타나 넓게 조망할 수 있다. 회진 앞바다, 바다 너머 완도의 약산 삼문산, 고흥군의 거금도 적대봉이 보인다. 천태산 정상 들머리에 신라 후기 800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는 정수사(淨水寺)라는 고찰이 있다. 정수사는 혼을 담아 자기를 빚는 도공들의 기도 도량이며, 절 내에 도조사(陶祖祠)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강진 출신 의병장으로 왜군을 유인하여 싸웠던 염걸(廉傑)[1545~1598] 장군의 형제와 아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사당 충효사가 있다. 천태산 남쪽과 천태산 아래 관찰봉 사이의 안부(鞍部)인 기잿재를 통과하는 고갯길을 지방도 제819호가 동서로 통과하고 있다.

천태산에서 인증 

가야할 마루금과 그넘어로 완도군이 보이고 

여계산방향으로 

여계산전라남도 강진군의 대구면 사당리 당전 마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11m). 동측에 있는 뒷내를 사이에 두고 그 동쪽의 만경대(383m)와 마주 보고 있다. 주민들은 만경대를 대계산(大鷄山)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수탉형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통하여 여계산(女鷄山)은 대계산에 대응한 암탉 형국의 풍수지리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향토지에 1592년(선조 25)에 창녕 조씨가 대계산 앞에 터를 잡았는데, 그 뒷산이 닭의 형국이고 그 산 너머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계치(鷄峙)라고 하였다는 기사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하여 닭과 관련된 지명이 조선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험한 바윗길을 내려오다 천태산을 뒤돌아보고 

등로는 천태산에서 정리를 해놓아 험하지만 상태는 좋다. 

정리된 등로 

임도내려가는 삼거리 갈림길     천태봉이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듯하다 

여기서 우측의 좋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능선으로 내려간다 

아직까지는 등로는 좋은 편이고 

이봉 오기전부터 등로는 사나워 진다  잠목과 가시덩쿨등으로 

435m봉 

493,4m봉가는 등로는 정말 너무 지독하고 험악하다 산죽과 잡목으로 완전 개고생을한다 

정상도 좌측으로 비켜 올라야한다,  바로는 뚫고나갈 방법이 없다 

493,4m봉   

여기서 잠사 휴식과 빵으로 배를 채우고 

잠시 진행하다 좌측으로 꺽어내려간다,  주의할 구간이다. 

내림길은 엄청 급하고 등로도 거의 없어 시그널과 트랙을 자주보면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바라본 가야할 마루금 

고생고생하며 내려와 임도에 도착한다   그래도 산죽이 없어 좀 낫다   허나 잡목이 무척 심하고 바위가있어 등로가 험하다  

우측으로는 강진 지방도와 합류된다 

벌목지대를 만나고   기잿재도로가 보인다. 

너무 훵하니 보이니 마음이 훵해지는듯하다,   걷기는 좋지만 

좌측으로 임도따라 내려가 도로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도로따라

기잿재 

기잿재는 전라남도 장흥군의 대덕읍 신월리 내동과 강진군 대구면 계율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해동지도』(장흥)에 계치(界峙)로 기재되어 있다. 월정 서남쪽에 있는 긴 고개이다.  기잿재란 유래는 찾을길 없고 ....

기잿재삼거리  

오늘구간의 종착지인 신리도 표기되어 있다. 

기잿재를 지나 벌목지대를 오르며 지나온 등로를 돌아본다.  정중앙봉이 493.4m봉

우측으로  천관산이 보이고 

250여m무명봉을  힘들게 올라 좌측으로 진행하니 벌목지대가 나오고  우측으로 천관산이 보인다 

오늘 산행중 우측으로 천관산이 따라 다니는듯하다 

산불이 나지 않은듯한데 벌목이 이루아지고 있다.  좀 안타까운 현실일듯해 마음이 아프다.....

우측으로 부곡산이 보인다.

우측으로 약초지대인듯한 철망길을 따르며

벌목지대를 지나 진행하다  된비알을 오른다,  잡목이 많지 않아 다행이지만 체력이 떨어져 좀 힘이 든다. 

체육공원 팔각정 삼거리를 지나 

 

2등삼각점이 있는 부곡산(425m)에 오른다.   여기서 잠시 쉬어가고 빵으로 허기를 좀 채우고 

부곡산 삼각점   신지 21 

부곡산에서 잠 시 내려 섰다 잠깐 급하게 오른 409.8m봉

가야할 마루금이 보이는데 험하게 보인다. 

무선 송신탑도 지나고 

392,8m봉을 오른다 

우측으로 강진근 남해바다도 보이고

된비알을 올라 무명봉을 지나고 

등로 우측에 있는 공성산에 오른다 

공성산(397.2m)

「공성산 전설( )」은 공자와 같은 성인이 배출될 곳이라는 의미에서 공성산()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는 이야기이다.

공성산은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신리 동북방에 있는 산인데, 생김새가 성인처럼 인자한 느낌을 준다. 본래 공성산에는 모성래[학공재]라는 서당이 있어 학동들을 가르쳤는데, 공자와 같은 성인이 배출될 곳이라고 하여 공성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문림의향 장흥설화』에 따르면, 신리 마을은 여성이 누워 있는 형국이고, 공성산은 남자 형국이라 공성산에서 성인이 날 것이라는 말이 전한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공성산에서 엄청 급하게 내려와 안부에서 다시 급하게 된비알을 오르며 공성산을 뒤돌아본다. 

공성산에서 내림길은 무척 심한 내림길로서 군데군데 잡목도 많은 등로다   안부에는 잡풀과 잡목이 있어 어수선하고 

우측으로 대덕면과 강짐군 마량면이 보이고  대덕면 하분저수지도 보이고 

안부에서 잠시 된비알을 오르니 309.1m봉에 도착한다 

309,1m봉에서 급경사를 잠시 내려와 편백숲을 만나고 

안부를 지나 91,3m봉에 도착한다 

이런곳을 지나 좌측으로 진행하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우측 좋은 길로 진행하여 잠시 알마 

알바중의 식물 

이곳까지 진행하다 다시 돌아간다   그냥 진행해도 되는데.....

다시 돌아와 넓은 분지전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니 등로가 어수선하다   트랙을 따라 내려가니 포장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진행한다 

ㄼ은

삼거리에서 좌측 마을로 내려가고 

신리 마을이 보이고 

신리 삼거리에 도착한다. 

신리 삼거리에서 사자지맥 3구간을 종료한다 

신리마을소개

장흥에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가장 깨끗한 바다에서 서식한다는 겨울철 대표 웰빙 식품인 매생이와, 염산을 치지 않는다고 하여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 식품’으로 선정된 무산김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장흥 키조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흥군 바닷가 마을에서 생산된 대표 식품이다. 신리마을은 거의 모든 세대가 매생이 양식과 연관을 맺고 있다. 겨울이면 마을 앞길이 모자라서 동구밖까지 매생이 발장을 말리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신리마을은 갯벌의 경사가 완만하고 넓다. 썰물 때면 갯벌 끝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고, 개막이체험을 한다. 득량만의 끄트머리이며 강진 마량으로 이어지는 신리 앞바다는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숭어, 도미, 망둥어 등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

그런데 대덕면 일대가 간척사업으로 농토를 많이 확보한 후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수산업에서 손을 뗀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가 육지보다 많은 소득을 올려주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마을 사람들은 득량만 위쪽에서 축산 폐수를 바다에다 바로 버리지 않고, 김양식장에서는 잡초를 죽이는 염산을 뿌리지 않고 무산김을 양식하면서 바다가 수질을 회복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염산에 가장 취약한 매생이가 많이 자라고, 맛있는 김이 생산되고, 바지락과 키조개가 많이 잡힌다. 게다가 갯벌에서는 낙지가 많이 잡히는데 다른 지방 낙지에 비해 힘이 느껴진다. 살이 찌고 힘인 강한 낙지는 맛이 좋고 영양분도 풍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막이체험을 할 때는 숭어, 도미, 놀래미, 갯장어 등 다양한 자연산 어종이 그물에 걸린다. 다만 마을에 횟집이나 음식점이 없어서 제대로 된 식당을 찾으려면 대덕읍내나 이웃에 있는 강진 마량항으로 나가야 한다.

내려온 구간 

마량면으로 가는 방향 

309.1m봉에서 91,3m봉을 지나 신리 삼거리로 내려온 구간 

 

신리 삼거리에서 캔맥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금방 온다던 버스가 오지 않아 대덕 택시를 불러 고티재로 이동하여 차량을 회수하여 호진면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오능 구간은 양암봉까지 임도도 있으나 잡목과 엄청난 산죽으로 무척 고생을 하였고 459.6m봉오름길이 엄청 힘들었던 구간이다.  천태산 오름길도 무척 힘들었고  493,4m봉 우름길이 산죽과 잡목으로 너무 힘이 들었던 구간이었다.   그 이후로는 잡목기 덜했지만 오름내림이 심했던 3구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