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서기맥 (湖西岐脈) 이란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1,058m)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말티고개, 선도산(547m), 상당산성, 좌구산(657m), 보현산(481m)을 지나
안성 칠장산(516m)에서 두 개의 산줄기로 나누어 진다.
하나는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을 지나 한강 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漢南正脈) 이고,
다른 하나는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에 있는 안흥진 까지 이어지는 금북정맥(錦北正脈) 이다.
그러나 산경표의 금북정맥((錦北正脈)은 금강(錦江)과 별로 관계가 없는 오서산, 가야산을 경유
한데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금강의 북쪽 수계를 경계짓지 못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금북정맥의 백월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성태산(624m), 조공산(399m), 월하산(423m),
월명산(544m), 옥녀봉(388m), 봉림산(346m), 오석산(127m), 남산(147m), 중태산(102m),
왕개산(98Mm)을 지나 장항 앞바다의 금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69.4 km인 산줄기를
금북기맥(錦北岐脈) 또는 호서기맥(湖西岐脈) 이라고 칭하고,
이 산줄기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금강의 북쪽 수계를 경계 짓는다고 보고 있다.
○ 금북기맥(錦北岐脈) 구간거리 (도상거리 69.4km)
백월산(570m)-2.8km-성태산(623m)-2.5km-반고개(210m)-2.5km-조공산(390m)- 4.8km-
새재고개(310m)-3.5km-월하산(422m)-3.3km-지티고개(146m)-4.0km)-월명산(544m)-
3.4km-343봉-1.2km-서낭당고개(210m)-5.0km-옥녀봉(367m) -3.0km-부시치고개(110m)-
3.0km-놋점이고개(130m)-3.0km-177봉-1.6km-봉림산(346m)-1.1km-가루골고개(110m)-
1.0km-뒤실고개(90m)-0.8km-안골고개(30m)-2.0km-은굴고개(30m)-2.0km-철도(30m)-
2.5km-서천종고(30m)-1.5km-큰남산(0.4km)-남산(146m)-1.5km-신산리도로(30m)-1.0km-
남상마을도로(30m)- 1.5km-관저울도로-0.7km-흥덕리고개-0.3km-테뫼산(101m)-1.0km-
봉근리도로-1.7km-고속도로(10m)-0.7km-97봉-1.0km-고속도로-0.3km-용당정갈림길-
0.3km-창선동-2.6km-십자안부-0.3km-막내산-0.5km-도로-1km-전망산(50m)
호서기맥 산행계획
호서기맥은 5구간으로 나누어 산행을 한다.
호서기맥 1구간 백금리 백월산 등산로입구 ~ 백월산 ~ 새재고개 14.5km
들머리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646-1
날머리 : 충남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41-7 (새재, 대은리도로)
호서기맥 2구간 새재 ~ 비득재 17km
들머리 : 충남 부여군 외산면 화성리 41-7 (새재, 대은리도로)
날머리 : 충남 부여군 옥산면 산기리 산 30-3
호서기맥 3구간 비득재 ~ 놋점이고개 12.5km
들머리 : 충남 부여군 옥산면 산기리 산 30-3
날머리 : 충남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45-5
호서기맥 4구간 놋점이고개 ~ 서천오거리 16,9km
들머리 : 충남 서천군 판교면 판교리 45-5
날머리 :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824-1(서천오거리)
호서기맥 5구간 서천오거리 ~ 용당정 17.34km
들머리 :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824-1(서천오거리)
날머리 충남 서천군 장항읍 원수리 929-16
호서기맥 개념도





호서기맥 1구간 백금리 백금저수지 ~ 백월산 ~ 새재고개
개요
며칠전 성주지맥 1구간을 마치고 기맥의 마지막인 호서지맥을 위해 청양으로 향한다.
그동안 언제 해야지하면서 머릿속에 그리던 산행이다 수원에 갈일이 있어 겸사겸사 산행도할 계획으로 먼길을 떠나는 길,,,,
화성에 있는 친구와도 왠만에 얼굴도 볼겸해서 함께하는 산행이다.
3일전에 성주지맥1구간을 좀 무리해서 한 여파가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이틀을 쉬어 큰 지장은 없다고 생각하고,,,,
수원에서 출발하여 예산예당휴계소에서 친구를 만나 아침을 해결하고 충남 청양군 남양면 백금리646-1에 도착한다.
시작부터 가랑비, 안개비비가 오기 시작하고 백월산 오름길이 가파르다, 금북정맥들로와 만나니 2012년 1월에 지나간 기억이 나 감회가 새롭다. 성태산도 가파르게 오르고 백세봉도 가파르다, 그루고개에서 조공산갈림봉까지 너무 빡센 오름길이고 감봉산은 너무 멀어 포기한다. 매등재를 지나 오르니 잡목과 가시나무가 거추장스럽다. 이후 밤나무단지등을 지나 무난히 새재에 도착하여 1 구간을 마친다
일시 : 2025년 12월 20일
날씨 : 오전 비 오후 갬
소재지 : 충남 청양군 남양면, 부여군 외산면, 보령시 청라면, 부여군 ,외산면일대
행정 : 수원(06:00) ~ 예당호휴계소 ~ 남양면 백금리백금저수지(09:27) ~ 백월산(575.6m, 10:38) ~ 월치(11:10) ~
성태산천세봉(526m, 11:50) ~ 성태산 만세봉(32m, 12;03) ~ 행여산(백세봉, 493.9m, 12:53) ~ 반고개(11:30) ~
구루고개(14:09) ~ 치앙재() ~ 조공산 갈림봉(14:40) ~ 조공산(399.3m, 14:48) ~ 조공산 갈림봉(14:54) ~ 구산이재(15:03)
~ 감봉산갈림봉(403,2m봉, 15:10) ~ 매등재(15:22) ~ 새재 (16:43)
산행거리 : 오룩스맵 기준 gps 16.18km
산행시간 : 7시간 15분
동행 : 친구 승범이와
트랙



사진및 일지
수원에서 출발하여 예당호휴계소에서 친구를 만나 아침을 해결하고 백금리 백금저수지 백으ㅓㄹ산 등산로입구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한다. 준비도중에 비가 한두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백금 저수지와 성태산방향능선

백월산 등산로입구



호서기맥 시작을 알리는 인증을 한다 본인

울 친구 승범

백월산 1.9km 여기 고도가 180m정도이니 백월산까지는 고도 400m정도를 올라야 한다, 오늘은 시간이 충분하기에 천천히 느림보의 미학으로 진행한다.

직진

월산사 돌절구

월산사와 백월산 삼거리 우측 백월산으로

계속 급경사를 올라 쉼터에 도착하고


409m봉에 오른다


백월산 헬기장에 도찻하여

약 30m떨어진 상투바위에 다녀온다.

상투바위


금북정맥과 합류한다 2012년 01월29일에 이곳을 지나갔으니 벌써 14년가까이 지난 셈이다



배문을 지나고


백월산(575.6m)에 도착한다


2012년 01월 29일 금북정맥때의 사진

호서기맥 분기봉 백월산 인증


친구도


금북정맥에서 우측으로 호서기맥으로 진행한다. 우측은 금북정맥 스무재로가는 등로



좌측으로 꺽어내려가니 임도가 나오고


넓은 공터가 있는 월재에 도착한다. 고도 310m


성태산으로 급경사를 오르다 만난 숫돌바위

숫돌같이 생곁다하여 붙여진 이름

월재에서 고도 220m의 급경사를 올라 만난 성태산 천세봉이다.





성태산 천세봉, 성주지맥 분기봉이기도 하다, 3일전 이곳에 올라 성주지맥 1구간을 했었다.
100여m떨어진 성태산 만세봉을 다녀온다


성주지맥 분기점 산패

분기점에서 100여m떨어진 만세봉 이곳이 성태산 정상이다
성태산은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과 청양군 남양면·보령시 청라면의 경계를 이루는 삼면봉이다 ,
성태산(星台山)은 부여군 외산면 수신리와 청양군 남양면, 보령시 청라면의 경계를 이루는 631m의 산이다. 차령산맥이 이어지는 비교적 높은 산지에 속하며, 부여군 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성태산의 명확한 명칭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산경표(山經表)』에 “금북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여지도서(輿地圖書)』 ‘홍산현’에 “관아의 북쪽 50리[19.6㎞]에 있다. 보령(保寧) 오서산(烏棲山)에서 뻗어 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지명조사철」에는 성태산에서 바라다 보면 외산면, 보령시 청라면, 사양면 3개면이 보이고 또 부여군, 보령시, 청양군 3개 지역이 보인다 하여 ‘삼태산(三台山)’이라고 부르다가 ‘성태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태산 [星台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구간을 내려간다 비가 안개비로 변하여 잔뜩 흐리고 습도가 엄청 높다 , 바닥은 미끄럽고

삼거리에서 직진방향으로 내려간다 우측은 백금리 방향


옥가실 삼거리도 지나고


옥가실 삼거리에서 행여봉까지는 또한번의 급경살르 오른다

행여봉(백세봉, 493.9m)
이봉에서 기맥길은 우측으로 꺽여 내려간다.




임도를 만나 직진하고





과수원을 지나고

안부에서 우측으로 돌아 반고개로 내려간다

이곳 우측으로

반고개에 내려서고
반고개는 부여군 외산면과 청양군 남양면의 경계에 잇는 고개이다, 606번 짐방도가 지나고 있다.


절개지를 올라 밤나무밭을 지나고 수확철에는 원망도 많이 듣겟다

234m봉

우측으로 진행하여 밤나무 끝단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임도가 있는 작은 반고개에 도착하고


우측으로 납골당도 보인다

좌측에 대나무숲길도 지나고

묘에서 내려가면

그루고개에 도착한다
그루고개는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와 매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이가

부역는충청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동쪽은 논산시, 서쪽은 서천군 · 보령시, 남쪽은 금강을 경계로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북쪽은 공주시 · 청양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44′∼ 127°03′, 북위 36°04′∼ 36°23′에 위치한다. 면적은 624.57㎢이고, 인구는 7만 114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5개 면, 433개 행정리(19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다.
1975년에 발굴, 조사된 초촌면 송국리 선사취락지는 농경생활을 하던 청동기문화인의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이곳에서는 주거지를 비롯해 민무늬토기 · 간석기 · 돌널무덤 등이 발굴되었으며, 탄화미도 발견되어 벼농사의 기원을 무문토기문화와 확실하게 연결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이곳과 연관성이 있는 초촌면 산직리와 규암면 · 은산면 · 충화면 · 석성면 등지에 고인돌을 비롯해 청동기시대의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초산국(楚山國)이 이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부여군은 백제시대의 소부리(所夫里) · 대산홀(大山忽: 지금의 鴻山) · 가림홀(加林忽: 지금의 林川) · 진악산(珍惡山: 지금의 石城)에 해당된다. 특히, 부여읍 일대는 소부리 혹은 사비(泗沘)라고 했으며, ‘부리’라는 말은 ‘밝다’, ‘붉다’ 등에서 나왔다고 한다.
538년(성왕 16)에 백제는 웅진(熊津)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꾸었다. 그 뒤 6대에 걸쳐 120여 년 동안 백제의 수도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번성기에는 가구수가 13만여 호에 달했으며, 이 시기에 문화의 꽃을 피웠다.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의 문무왕이 총관을 두었고 686년(신문왕 6)에는 사비주를 군으로 삼았으며, 경덕왕 때 웅천주를 웅주로 고치면서 부여를 그 속군으로 하였다. 이때 석산현(石山縣: 지금의 석성) · 열성현(悅城縣: 지금의 청양군 정산면) 등이 부여군의 속현이 되었다.
신라 말에는 후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려 태조가 후백제 신검의 항복을 받고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곧 고려의 영역이 되었다. 그 뒤 성종 때 하남도(河南道)에 예속되었고, 예종 이후에는 청주목의 속군인 공주에 속하여 부여군이라 하였다.
현종 때는 일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으며, 1028년(현종 19)에는 정림사(定林寺)가 중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말엽에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는데, 1376년(우왕 2)에 최영(崔瑩)이 홍산면 일대에서 왜구를 크게 토벌하였다.
건국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채택해오다가 태종 때 팔도제(八道制)를 정비하면서 공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부여군은 부여현 · 홍산현 · 임천군 · 석성현으로 나뉘어 있었고, 4개 군현에 각각 향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6개의 사액서원을 비롯해 많은 서원 · 사우가 세워졌다.
1895년(고종 32) 팔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구획하면서 공주부 관하의 부여군으로 승격하였다. 1896년 13도제로 변경했을 때 충청남도의 군이 되었다. 1914년 부 · 군통합령의 실시로 홍산 · 임천 전 지역과 공주의 일부 지역을 편입해 16개 면을 관할하였다.
1960년 1월 1일 부여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73년 7월 1일 석성면 현북리가 부여읍에, 장암면 사산리가 세도면에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을 뿐 큰 변화는 없다.
이 고장은 백제의 도읍지였던 관계로 백제 망국과 관련된 설화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조룡대전설(釣龍臺傳說)」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마강을 수호하는 호국룡(護國龍)을 말을 미끼로 낚아 무사히 강을 건너 백제를 공격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조룡대 위에는 소정방이 용을 낚아 올리느라 힘을 쓸 때 패었다는 밧줄자국이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백제가 망할 조짐을 미리 예견했다는 설화도 전한다. 신라의 백제 침공이 있기 직전 한 동자(童子)가 백제의 도성을 다니며 “신라승백제망(新羅勝百濟亡)”이라는 예언을 외우고 다녔는데, 그를 따라가 보니 마래방죽으로 들어가 자라로 변신했다는 내용의 설화가 그것이다.
「자온대전설(自溫臺傳說)」 역시 백제시대의 것이다. 평소 임금이 경관이 좋은 자온대에 행차하기를 즐겼는데, 이것을 안 신하가 임금이 따뜻한 바위에 앉아 놀 수 있도록 미리 불을 피워 바위를 따뜻하게 했다는 데서 유래한 그 이름이 자온대라 전한다.
한편, 민중영웅담인 「이몽학전설(李夢鶴傳說)」이 있다. 조선 선조 때의 이몽학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농민들을 규합하여 혁명을 시도, 홍성지방까지 점령했으나 결국 관군에게 진압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패한 것은 그보다 지모가 뛰어난 누이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몽학을 낳을 때는 그 어머니가 장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 데 비해 그 누이를 낳을 때는 하늘을 자유로이 오르내리는 꿈을 꾸어서 동생보다 더 뛰어났다고 하는데, 이몽학이 이 누이의 말을 무시하는 바람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 백제의 부흥운동을 하다가 분사한 장군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는「은산별신제유래담」과, 호랑이로 변해 개를 잡아다가 어머니의 병간호에 효성을 다했다는 「호랑이황팔도설화」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 지방은 백마강을 끼고 평야가 펼쳐져 있어 벼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긴모심기소리」 · 「자진모심기소리」 · 「긴김매기소리」 · 「자진김매기소리」 · 「타작소리」 · 「벼부치는소리」 등의 농요가 많이 전승되고 있으며, 바다와 가까운 쪽에는 약간의 어요가 전해 오고 있다. 또, 「길쌈노래」 · 「시집살이노래」 · 「부모노래」 · 「달노래」 같은 부녀요와 장례 지내는 절차에 「상여소리」도 불러오고 있다.
부여지방의 모심기소리는 「산유화가」라 하여 농민들의 생활감정을 두루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노랫말에 백제 패망의 비애를 절실히 담고 있어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며, 이 고장의 향토성과 역사성을 잘 반영한다.
“산유화야 산유화야/ 사비강 맑은물에/ 고기잡는 어옹들이/ 온갖고기 다잡아도/ 경칠랑은 낚지마소/ 강상풍월 좋을시고/ 헤헤헤 아하 헤헤/ 헤헤헤헤여로 상사듸요/ 산유화야 산유화야/ 이런일이 웬말이냐/ 용(龍)머리를 생각하면/ 구룡포(九龍浦)에 버렸으니/ 슬프구나 어화벗님/ 근국충성 못다했네.”
세련된 가사로 백마강의 승경을 멋스럽게 노래하면서 백제 역사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회고적으로 읊고 있는 이 민요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져 있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하였다.
이 「긴모심기소리」는 중모리장단에 가까운데, 뒷소리가 딸리는 장절형식으로 되어 있고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네 장단 메기면 농군들이 두 장단에 ‘헤헤헤 아하 헤헤 헤헤헤헤여로 상사듸요’ 하고 받는다. 선율은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으나 전라도 상사소리와 약간 다른 향토적인 가락으로 되어 있다.
「자진모심기소리」는 모심기 끝판에 부르는 소리로, 중중모리장단으로 되어 있어 좀 빠르고 소리도 짧다. 뒷소리는 ‘어화어화 상사듸여’로 되어 있고 막판에 빨리 몰아가면 흥겹기 그지없다.
「김매기소리」는 「덩어리소리」라 하여 먼저 느린 소리로 ‘에하 덩어리’하고 경토리에 가까운 화평스러운 가락으로 유장하게 메기고 받는다. 그리고 김을 매다가 ‘어화덩이’하고 중중모리장단으로 몰아가며 흥겹게 메기고 받는다. 막판에는 둥글게 싸며 ‘어화덩이’하고 자진모리장단으로 몰아가면서 메기고 받는 것이 구성지고 씩씩하다.
개상질로 타작하는 「타작소리」는 「바심소리」라 하여 세마치장단으로 ‘에야에헤’하고 뒷소리를 받으며 씩씩하게 부르는데 가락과 손발짓이 맞아떨어진다. 「벼부치는소리」는 「나비질소리」라 하여 돗자리를 펄럭여 벼의 먼지를 날리며 중모리장단으로 ‘헤헤헤여라 술비야’하고 뒷소리를 부르는 특이한 민요이다.
강을 따라 바다로 통하는 입포(笠浦) 쪽에서는 「어로요」가 불린다. 그물을 올리면서 느리게 “어여디여 어여디여차/ 어기야디여 어여디여/ 칠산연평 있는고기는/ 우리집그물로 다들었구나.” 하고 힘찬 가락으로 메기고 받는다.
부녀요로 대표적인 것은 역시 「달노래」이다. “나무하나 캐다가서/ 기장밭에 심었더니/ 가지가지 열두가지/ 한가지는 해가열고/ 한가지는 달이열고……”라는 노랫말로 부녀자의 생활체험과 정서를 동요다운 감성으로 순박하게 잘 담아 부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여군 [扶餘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임도를 건너 진행하고

치앙재에 도착하여 조공산 갈림길로 오른다


조공산 갈림길까지는 엄천 심한 된비알이다. 심한 된비알을 오르는데 고라니2마리가 후다닥 앞을 지나가 버린다 엄청 빠르다.

조공산 갈림봉(401m)에 도착하고

갈림봉에 조공산이라 되어 있다. 조공산은 좌측으로 약 200여m떨어져 있는데
조공산을 다녀온다

조공산도착

조공산에서

친구도


분기봉(조공산 갈림봉)으로 돌아와 기맥을 이어간다.


조공산 갈림봉에서 얼마 안내려가니 부여재에 도착한다


이정목에는 부여재로 되어잇고 지도상에는 구산이재로 되어 있다.

감봉산 갈림봉(403.2m)에 도착한다
우측으로 가면 감봉산이고 기맥은 좌측으로 내려간다.
감봉산은 약 1,2km정도 떨어져 있어 왕복 1.4km거리라 포기를 하고 매동재로 내려간다.


등로를 정리해놓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곳은 불이 난듯한데 임도가 여러갈래로 나 있다. 우측으로 화성리저수지가 보이고

356.6m봉오름길에 아카시아나무와 잡목이 많다

저 멀리 감봉산(좌측 )과 감봉산 갈림봉이 보이고

356.6m봉

가야할 마루금

경치가 좋아 한사진 남기고

잡목지대가 이어지고

가야할 마루금

산불이 난 지역인듯한데 밤나무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밤나무단지를 지나 숲으로 들어서고



농가가옥이 보이고

밤나무 단지를 지나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 임도따라 내려간다 , 맞은편335.8m봉은 생략

우리차가 보이고 새재에 도착한다


새재에서

울 친구도
오늘 산행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 찝찝한 산행이 계속되었고 습도가 무척 높은 산행이엇다. 다행히 거리가 짧아 부담이 덜하고 수월한 산행이 된 산행이었다. 백금리백금저수지로가 차량을 회수하고
숙소를 고민하다 고령으로 가 모텔에서 쉬고 저녁에 친구가 발전소근무한경험이 있어 이곳 지인을 잠시만나 회포를 푼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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