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맥종주/진도지맥

남도의 끝자락 진도지맥을 가다

SANMA 2024. 2. 28. 12:24

 

진도의 최고봉 첨찰산

 

 

지맥 30번째  진도지맥 

진도지맥 1구간  진도대교 ~ 왕무덤재 

개요  

진도지맥이란 

진도지맥(珍島枝脈) 은 해남반도와 진도를 잇는 진도대교에서 시작해 진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남쪽끝 서망항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로서, 망금산(112m), 도암산(122m→1.2km),

금골산(198m), 고두산(252.2m→1.4km), 챙재, 철천산(161.2m),상봉(266m), 출일봉(226.7m),

첨찰산(485.2m→0.7km), 수리봉(389m), 여귀산(458.7km), 연대산(148.8km), 월출산(110m),

희여산(269m→0.2km), 한복산(232m)을 지나 백도앞 갯바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7km인 산줄기 이다.

 

진도(珍島)

 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섬으로 대한민국의 최서남단 (동경 126°15′, 북위 34°28′)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 430.7㎢, 인구 34,000여명, 1읍 6면 2출장소, 230개 도서(유인도 45, 무인도 185)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대체적으로 남동부는 급경사, 북서부는 완경사를 이룬다.

첨찰산(尖察山, 485m)이 최고봉을 이루며 남쪽에는 여귀산(女貴山, 457m)이 있다.

 

하천은 인지천(仁智川)·석교천(石橋川)·이십오천(二十五川)·진도천 등의 소하천이 흐른다.

이곳은 온화한 해양성기후를 보이는 곳으로 1월 평균기온은 1.7℃, 8월 평균기온 은 26.4℃,

연강수량은 1,350㎜이며, 해마다 태풍의 피해가 심한 곳이다.

 

식생은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팽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가 자라고 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밭농사가 논농사보다 비중이 크다.

 

1984년 해남반도와의 사이에 진도대교가 설치되어 광주간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교육 시설로는 초등학교 20개교, 초등학교분교 16개교, 중학교 7개교, 중학교분교 1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문화재로는 용장리의 용장산성(龍藏山城, 사적 제126호), 남동리의 남도석성(南挑石城, 사적 제127호) 등과
첨찰산 남쪽 기슭에 쌍계사, 운림산방(雲林山房) 등이 있다.

또한, 매년 음력 4월에 펼쳐지는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는 진도와 모도 사이의 바닷길이 유명하다.

 

천연기념물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와 진도의 백조도래지(천연기념물 제101호),

진도 의신면의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07호), 진도 임회면의 비자나무(천연기념물 제111호) 등이 있다.

 

그 밖에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인 <강강술래>, 제51호인 <남도들노래>, 제72호인 <진도씻김굿> 등이 있다.

이곳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 민요인 <진도아리랑>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매년 4월 옥주문화제(沃州文化祭)가 열린다.

구간별 거리 

 

진도대교~0.3~망금산~2.5~도암산(-1.2)~1.4~금골산~2.3~고두산(-1.4)~2.4~챙재~0.5~

철천산~1.5~선황산(-2.5)~0.2~상봉~1.4~출일봉~2.1~첨찰산(-0.7)~0.4~제봉(-0.6)~1.1~

수리봉~4.2~왕무덤재~0.3~남산(-0.4)~3.6~칠전고개~1.8~삼막봉(-2.1)~7.1~여귀산~5.1~

연대산~2.2~월출산~0.5~희여산(-0.2)~3.3~한복산~2.8~백미도앞 / 47.0km

 

◆ 주요 봉우리 

 

망금산(112m), 도암산(122m), 금골산(198m), 고두산(252.2m), 철천산(161.2m),

선황산(229.2m), 상봉(266m), 출일봉(226.7m), 첨찰산(485.2m), 제봉(303m),

수리봉(389m), 남산(243m), 삼막봉(258m), 여귀산(458.7m), 연대산(148.8m),

월출산(110m), 희여산(269m), 한복산(232m)

 

영산기맥을 마치고 남도의 끝자락인 진도의 진도지맥을 위해 떠난다. 

진도지맥은 잡목과 가시덩쿨등으로 악명이 높아 겨울철에 해야  좀 고생을 덜한다한다.  

집에 일도 있고하여 미루다가 1구간만 하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진도휴계소에서 차박을 하고(승용차라 좀 불편하고) 아침 일찍 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대교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도로를 건너갈수없어 휴계소 뒷편 육교를 건너 망금산을 오른다.  육교를 건너 진도대교로 내려가 시작해야하나 도로따라 망금산으로 향한다. 망금산에서 내려와 삼거리에서 18번국도좌측 간이도로따라 진행하고 둔전리암도를 건너 18번 국도로 올라 진행하다 금성교삼거리에서 우측산으로 오르고(잡목과 가시덩쿨이 있지만 심하지는 않고)  우측으로 건배산과 도암산을 바라보며 진행하다 전망이 좋은 금골산에 도착한다.  금골산에서 내려와 농로를 따라 진행하다 연산리18번국도를 건너고 챙재까지 산능선으로 진행한다.  챙재에서 한참동안 들머리를 찾지못하다가 우측으로 내려가 무작정 지맥능선으로 오른다.  철전산을 오르고(잡목심하고 등로 희미함)  철전산에서 잡목과 가시덩쿨이 심한 희미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성재에 도착하고 양호한등로를 따라 용장산성에 도착한다. 산성은 잘보존되어 있고  상봉에 도착하여 라면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출일봉을 거쳐 오목재로 내려서는데(등로찾기가 무척 어렵다) 좌측으로 너무 꺽어 내려가는 바람에 공원으로 내려선다. 우측 오목재로 올라 진길성당을 거쳐 제각이 있는 삼거리까지 농로를 따르고  첨찰산임도까지 잡목과 낙엽, 희미한 등로와 된비알등로와 씨름하고  임도에 도착하여 한참 망설이다 첨찰산을 다녀온다.  진도의 최고봉인 첨찰산을 다녀오니 마음이 좀 무거웠던것이 트인것 같다.  돌아와 임도를 따르고....   산으로 들어서고 좋은 등로를 따라 수리봉을 거쳐 양미굴에 도착하고 188.4m봉에서 잡목길을 거쳐 왕무덤재에 도착하여 진도지맥 1구간을 마친다. 

 

일시  :   2024년 02월 26일 

날씨  :  흐림,  미세먼지 보통 

소재지  :  전남 진도군 군내면, 고군면, 진도읍일대

행정  :  창원(25일 20:00) ~ 진도대교 ~ 진도휴계소(차박)(26일 오전 06:45) ~ 망금산(106.5m, 07:00) ~

   금골산(198m, 08:38) ~ 18번국도(연산리, 09:28) ~ 챙재(11:00) ~ 철천산(162.1m, 11:33) ~ 용장산성(12:09) ~

   상봉(266.4m, 12:22) ~ 중식(20분소요) ~ 출일봉(228.6m, 13:06) ~ 오목재(13:30) ~ 진길성당 ~ 첨찰산 임도(14:33)

   ~ 첨찰산(482m, 14:57) ~ 임도(15:16) ~ 수리봉(388.5m, 15:45) ~ 양미굴 ~ 왕무덤재(15:16) 

산행거리  :  gps 25.47km    도상 20.3km 

산행소요시간   :  10시간 32분(중식시간 포함)

동행   :   나홀로 

지도및 트랙

 

사진및 일지

창원을 자차로 출발하여 진도휴계소에 도착하니 23시경이다.  간단히 준비한 맥주한잔하고 차박을 한다.  승용차라 많이 불편하네....   아침 5시 40분경에 기상하여 식사준비를 하는데 길 건너편국밥집이 문을 열어 국밥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진도대교앞 진도휴계소가 녹진인데 녹진은 진도군 군내면에 속해있는 녹진리(廘津里)는 지형이 사슴의 뿔처럼 생겼으므로 녹진(廘津)이라 하였으며, 이 동네 동쪽과 해남 간에 1982년 다리가 놓여 진도의 관문이 되었으며, 쪽의 망금산(望金山)[111m], 서쪽에 도암산[122m]이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낮은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녹진, 고지, 다리안, 망금, 대야, 샘골, 서당골마을 등이 있는데 녹진마을은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녹진리의 그것과 같으며,  고지마을은 곶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다리안마을은 부락 앞에 다리가 놓여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망금마을은 망금산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야마을은 앞에 큰 들이 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샘골마을은 샘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휴계소 국밥집에서 바라본 망금산과 진도타워 

(퍼옴)  사진기가 안좋은지 어두운곳에서는 사진이 잘나오지 않아  사진을 퍼왔다. 

 

아침 식사후 진도대교를 바라보고 

진도대교앞으로 가 도로를 건너려고하니 차도 많이 다니고 위험하다 

다시 휴계소로 돌아와 휴계소뒷편 육교를 이용하여 18번 국도를 건너고   

옷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 진도대교에서 망금산을 올라야 하나  우측도로따라 망금산을 오른다. 

망금산에 도착한다. 

망금산은 진도타워가 자리하고 있다. 

진도대교와 울들목 

전남의 진도에는 해남반도를 사이에 두고 유리병의 목처럼 갑자기 좁아진 해로가 있는데, 이것을 울돌목이라 한다. 바닷물이 간조와 만조의 때를 맞추어 병의 목 같은 좁은 곳을 일시에 지나가므로 울돌목의 조류는 거세기로 이름이 높다. 남곤(南袞)은 시에서 ‘붉은 비 내리고 녹음은 살찌는데 거센 바람이 물결을 치매 조수(潮水)소리가 장하구나’라고 했다. 조수가 요란한 곳임을 표현하는 글귀이다. 조수는 썰물 때 물을 따라 해벽에 부딪혀 요란한 울음 소리같이 들리므로, 명량(鳴梁)으로 통용하기도 한다.

오도숙(吳道淑)이 《상경해정기》에서 울돌목을 한자로 울도항이라 표현한 것을 보면, 목이 곧 항인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동서가 물길로서 분리된 해안에는 석벽이 솟아 있고 바다의 넓이는 수십 보밖에 안 되나, 파류(波流)가 세어 소용돌이 일고 상경하는 배들은 이를 피하여 옆으로 세웠다’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해로의 목에 해당하는 울돌목이 조류가 세고, 그것을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이 전략에 이용함으로써, 명량대첩을 거둔 전략적 요새지가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명량()은 우리말로 울돌목이라 부른다. ‘울’은 ‘운다’의 뜻이고 ‘돌’은 ‘돌다’의 의미인데, 물길이 휘돌아 나가는 바다가 마치 우는 소리를 내는 것처럼 들려 붙은 이름이다.

남해에서 들어온 바다는 명량을 지나며 엄청난 속도의 조류로 돌변한다. 초속 6미터가 넘는다. 여느 바다에 비하면 네 배나 빠른 속도다. 밀물과 썰물도 하루 네 차례다. 더구나 불규칙한 수중 암반 때문에 물이 솟구치거나 회전하는 회오리 현상이 일어난다. 이순신 장군은 이런 지형의 특성을 이용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물리쳤다

좌측으로는 방금 출발한 진도휴계소가 있다 

망금산에서 내려와 도로삼거리에서 좌측 간이도로를 따라 18번 국도 좌측으로 진행한다. 

돌아본 망금산과 진도타워 

둔전리에서 지하도를 이용하여 18번 국도를 건너다. 

국도를 건너고 보니 가야할 등로가 이상하다.  18번 국도따라 가는 등로인듯하다 

전방의 전신주에서 18번국도로 내려서진행한다. 

18번 국도따라 진행하고 

금성교 신동교차로 에서 우측산으로 들어서고  돌아본 신동교차로 

잡목이 심하지만 그런대로 갈만하다. 

농원을 만나 좌측으로 지나고 

금골산이 보인다. 

113.4m봉에 도착하여 도암산과 건배산을 조망하고 

부처손이 지천이다 

금골산   산모양이 묘하게 생겼다. 

우측으로 건배산과 좌측의 도암산

잡목숲을 지나면 간벌지가 나오고 

금골산 삼거리 도착 

지나온 진도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망금산이 보이고 18번 국도와 지나온 산줄기 

망금산을 다녀온다,  망금산은 지맥에서 좌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금골산(  )에 도착한다. 

금골산은 해발 193m에 불과하지만,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이한 산이다.

개골산(皆骨山) 이라고도 부르며 산 전체가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또 다른 이름으로 상골산이라고도 부른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조각가가 일일이 예술작품을 조각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수십 길 절벽에는 층층바위를 이룬 곳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 또는 짐승으로 연상케 하는 기암괴석들이 산 전체를 수놓고 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관직을 빼앗기고 진도에 유배되어 온 이주()는 금골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금골산록」이라는 글에서 금골산에 대해 기록했는데,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오늘에 전해오고 있다.

금골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없으나 쇠 금(金)자에 뼈 골(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산 전체가 철분함량이 높은 화산암과 누런 금빛의 응회암으로 이루어졌고, 뼈처럼 골격미가 드러나 있는 산지 모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금골산에서 첫 인증을 하고 

가야할 마루금 

진도군 둔내면 둔전리와 금성초교 

나무계단으로 내려가 금골로 향하고 

연산마을로 

금성초교로 넘어가는 금골재 

연산마을로 간다. 

뒤돌아본 금골산 

63m봉에 도착하고   이봉에서 내려가는 등로가 험악하다,  잡목이 무척 심하고 

배추밭을 건너고 

사각정자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2차선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삼거리에서 도초따라 우측으로 진행하다 좌측 농로따라 간다. 

임도를 따르고 

하우스단지를 지나면 

18번 국도를 만나 좌측의 지하차도로 건너고 

다시 돌아본 금골산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좌측의 삼거리를 만나 좌측산으로 들어선다. 

좌측산으로 

 무명봉을 지나고 

237m봉에 도착하고 

반바지님이 설매봉이라 명명해놓았다. 

둔전재를 지나고 

이곳이 둔전재인줄 몰랐다. 

둔전(屯田)이란 고려·조선 시대에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한 토지를 말하는데 고려시대에는 영토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서

 군량 확보를 위하여 변경 지대에 처음 설치되었으며, 둔전병(屯田兵) 또는

  방수군(防戍軍)을 두어 경작하였다.

 

 말기에 이르면서 둔전을 경작하는 농민의 부담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농장(農莊)의

 발달과 함께 권세가에 겸병되는 폐해를 가져왔기 때문에 새로 왕조를 개창한

 조선 전기에는 둔전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일부를 제외하고는 혁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점차 국방문제와 군량 확보가 문제가 되면서 치폐(置廢)를 반복하다가 성종때

 (재위:1469~1494)에 제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둔전은 설치 목적에 따라 군둔전과

  관둔전으로 나뉘었고, 설치방법도 다양하였으며, 그 경영도 부역노동에 의한 경작이

 사라지고 영(營) ·아문(衙門)의 둔전에서는 병작제가 행해졌는데, 때문에 영·아문과

 둔전 경작자 간에는 지주제에서와 같은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둔전 [屯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222m봉   여기까지는 잡목이 상당히 많이 있다. 

챙재로 내려가는길 

마을을 만나 좌측으로 길을 찾아보지만 갈만한곳이 없다.   하는수없이 우측임도따라 마을을 통과한다. 

맞은편산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챙재에 도착한다. 

챙재는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의 송산리(松山里)와 세등리(細登里)를 나누는 고갯길로 길이 9㎞이다. 고개 동쪽과 서쪽에는 구릉이, 남쪽과 북쪽으로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철천산이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읍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고개였으나, 2003년 진도터널이 뚫린 후로 차들과 사람들의 왕래가 줄었다.   이곳사람들은 진고개라 부른다. 

챙재에서는 18번 국도와 801번 지방도로가 만난다. 진도읍에서 6.8㎞ 거리에 있다

챙재에서 들머리를 찾지못해 한참을 해맨다, 주유소와 근처는 옹벽이 가로막아 갈수없고  우측아래로 내려가다 가옥으로 가는길이 나오기에 올라가니 개들이 짖어대고 좌측 밭에서 숲으로 무작정 치고 올라가니 묘지가는길이 나오고 묘지에서 잠시 잡목숲을 헤치고 올라 지맥에 합류한다.  

 

지맥에 합류하여 지겨운 잡목숲을 진행하니 철천산에 도착한다. 

진도군 군내면 송산리와 세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아무런 전망도 없고

볼 품도 없는 산이지만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산이다. 

철전산에서 성재까지는 지독한 잡목길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옷도 좀 찢어진다.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서 고군면 도평리를 넘어가는 고개인데,  성황당흔적이 있는 돌무지가 있다.

서해랑길이라는 트레킹 코스와 겹쳐지는 고개로 양 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용장성가는 안부이다. 

성재에서 용장성가는 등로는 정비를 해 놓았는지 등로가 아주 양호하다.  작은 돌탑도 몇개보인다. 

용장성의 능선의 262m봉에 도착하니 조망니 좋다. 

좌측으로 용장성과 상봉이 보이고 

중앙우측에 출일봉과 오목재가 보이고  저멀리 진도기상대와 우측으로 진도최고봉인 첨찰산이 보인다. 

용장산성  보존이 잘되어 있다. 

용장산성은  (잠시 중학교때 배웠던 역사공부를 한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세등리와 고군면 벽파리·오류리·유교리 일대에 걸쳐 있으며

북벽과 서벽 및 동벽의 일부는 바다와 접하고 나머지 구간은 산 능선을 통과하고 있다.

북쪽은 우리나라에서 유속이 가장 빠른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명량해협과 접해 있고,

3개의 만과 곶으로 이루어져 있으며,현재 성벽은 곶 지형에만 남아 있다.

용장성(龍藏城)은 1270년(고려 원종11) 배중손(裵仲孫)과 노영희 등이 몽고에 굴복한

고려 정부에 반발하여 삼별초와 그 지지자들을 이끌고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부서(部署)를 정하고 관부(官府)를 열었으며 궁궐과 성곽을 쌓고 몽고 침략자와

개경 정부에 반기를 들어 승화후 온 (承和侯 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왕실과 대립되는 정권을

세웠는데 이 때 쌓은 성이 진도 용장성이다.

용장성의 축성연대는 1270년(원종11) 이후이며 삼별초군은 기존의 사찰 건물을 개조하여

궁지로 삼고 그 외곽의 산에는 구간을 따라 석축과 토축으로 된 산성을 개축하여 그들의

근거지로 이용하였는데, 원종 12년(1271) 5월 고려 정부는 김방경 등을 내세워 몽고군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진도 용장성을 공격하였고 김통정을 중심으로 한 삼별초의 잔여 세력은

진도를 떠나 제주도로 갔다...제주도에서는 1273년(원종14) 4월까지 지탱하다가 관군의

공격으로 소멸하였다. 

승화후 온 (承和侯 溫: ? ~ 1271)은 고려 현종(顯宗:8대 임금) 영녕공 준(永寧公綧)의 맏형으로

  1270년(원종 11) 고려가 몽골과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개경(開京)으로 환도할 때, 이를 반대하던

 삼별초(三別抄)의 배중손(裵仲孫) ·노영희(盧永禧) 등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들을 따라 강화도를 버리고 전라도 진도(珍島)로 옮겨 항전하였으나, 다음해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게 대패하자 아들 환(桓)과 함께 원(元)나라 장수 홍다구(洪茶丘)에게 살해되었다. (네이버백과에서) 

 

용장산성이 좌측으로 꺽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 진도지맥을 이어간다. 

안부로 내려와 잠시 급한 된비알을 오르니 상봉(266.4m)이다 

진도군 군내면 도평리와 고군면 오산리 경계에 있는 상봉...

맥꾼이 아니면 잘 오지 않을듯 한 산이다. 

이곳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해결한다. 

급경사를 내려가다 조망바위를 만나고 

조망바위에서 가야할 능산을 바라본다   끝봉이 출일봉이다. 

출일봉에 도착하고   이곳 출일봉까지는 등로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출일봉(228.6m)  

정상은 약간의 분지로 산패와 삼각점이 있다.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와 고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또다른 지명으로출석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출일봉 삼각점    진도 408 

출일봉에서 오목재 내려가는 등로는 아주 험악하다.  시그널을 따라가다보니 잡목이 극성이고 너덜지대도 나오고 

그런데 너무 좌측으로 틀어버려 공원으로 내려서버렸다. 

오목재로 내려서 18번국도따라 우측 오목재날맹이로 오른다 

출일봉에서 내려온 등로  사진의 좌측으로 틀어 내려왔어야한다. 

(퍼옴) 

(퍼옴)

오목재에 있는 진도 진길성당표지석 

오목재는 진도군 고군면 오산리와 고성리 경계지점에 있는 고개로 18번 국도2차선 도로가 통과한다. 

진도 진길성당으로 간다. 

진도진길성당 

오늘은 월요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밭에 농부들만 보이는데 괜히 미안해지는 느낌이다. 

농로따라 제각이 있는 삼거리까지 진행하고 제각좌측으로 올라가는 들머리가 있다 

대나무숲을 지나니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고 잡목들만 있고 경사가 상당히 된비알이다. 

동백꽃도 보이고 

저멀리 첨찰산이 보이고 

165,4m봉, 급경사 암봉, 지나고 334m봉을 지나 올라서니 임도를 만난다. 

첨찰산임도에 올라서 목을 축이며 잠시 갈등을 한다.  첨찰산을 다녀와야하나하고

하지만 진도의 최고봉인 첨찰산을 갔다와야하지하고 첨찰산으로 방향을 바꾼다.  배낭은 벗어놓고 

첨찰산 정상(482m)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고 무인산불감시대가 있다.  2등 삼각점이 있는데 확인못했다. 

점찰산봉수는동쪽의 해남 관두산 봉수, 남쪽으로는 여귀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의 해남 일성산 봉수에 전달하였다.

좌측으로 진도기상대 

첨찰산 정상석 

진도군  고군면 고성리와 향동리, 의신면 사천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진도군의 최고봉이자 진산으로 정상에는 봉수대와 이동통신탑, 정상석,

이정표, 2등 삼각점이 있고 주위의 전망이 전부 다 조망되는 곳이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산으로 불리는 산이다

 

백제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山城)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설치한

봉수대의 유적이 있으며  정상 맞은편의 봉우리에는 정상부에 진도 기상대가

있으며, 산밑에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쌍계사와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대가

있고, 쌍계사 바로 옆에는 소치 허유의 운림산방과 기념관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첨찰(尖察)이란 용어는 신라 시대때,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의거하여 많은 선악의 종류를 적은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던져 점(占)을

쳐서 과거에 지은 잘못을 관찰하고 참회하는 모임에서 나왔으며  600년

(진평왕 22)에 수(隋)나라에서 귀국한 원광(圓光, ?-630)이 처음으로 개최하고,

경덕왕(742-765) 때의 진표율사(眞表律士)는 점찰법(占察法)에 계율과 미륵

신앙을 결합시켜 널리 유포였다는 내용인데 한문표기는 이곳의 산 이름은

점찰(尖察)이고 佛家에서 사용하는 점찰(占察)이라했는데 ...

 

이곳 첨찰산의 명칭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봉화대가 있어 봉화산으로도 불렸다고

하며, 한자로는 뾰족할 첨(尖), 살필 찰(察)을 써서 첨찰산이라고 한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주위를 조망하기에 적합하며, 뾰죽한 산 정상에서 적이나 지세를 살피기

적합하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첨찰산에서 바라본 가야할 지맥 

지나온 지맥길   우측으로 진도망금산이 흐릿하게 보이고 금골산도보인다. 

다시 쌍계사 등산로삼거리로 돌아오고 

지맥은 임도로 내려서 수리봉으로 간다. 

배낭 벗어놓은 임도로 돌아와 임도를 따르고 

임도를 따르다 우측산으로 들어서고   

조금씩 아파오던 왼쪽무릎 오금쪽 인대가 정도가 심해진다. 

다행히 등로가 좋아 안심이 되고 

수리봉으로 

수리봉에 도착하고 

수리봉(388.5m)

진도군 군내면 월가리와 의신면 사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고 그냥 평범한 봉이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봉같다 

준희님의 산패가 걸려 있다. 

첨철산과 진도기상대를 돌아본다.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우측으로 진도 읍내도 보이고 

다시 임도를 만나 잠시 임도를 따르고  다시 우측산으로  

다시또 임도를 만나 가로지르고 

편백숲도 지나고 

 

임도를 지나 400m 정도 걸으니 운림산림욕장과

진도개  테마파크 갈림길인 임도를 만난다.  지금은 무슨 공사를 하는지 굴삭기가 고개에 있다. 

우측으로는 진도개 테마파크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운림산림욕장으로 가는 길인데 우측은 진도읍 동외리

좌측은 의신면 사천리로 이어지며, 마루금은 임도를 가로질러 삼별초등산로 종점,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향한다

멋진 팔각정과 체육시설과 앙증맞은 공원이 있고진도읍과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간간히 운동하는사람들이 보인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산에서 처음으로사람을 만난다...우측으로는 진도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이곳이 성죽재(165m:14:25)란다.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와 의신면 사천리를 잇는 시멘트 임도가 있는데  진도공설운동장에서 운림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팔각정 쉼터와 체육시설, 이정표가 있으며, 고개 윗쪽에는 반바지님이 성죽재(165m)라는 코팅지를 붙혀놨다...

 우측의 공설운동장 방향에 있는 동외리에 성죽골이 있어서 붙혀 놓았나,  

우측으로 보이는 진도읍 

226.3m봉

226.3m봉을 지나 양미굴이라 되어있는 146.9m봉에 올라가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46.9m봉에 반바지님의 양미굴코팅지 있다는데 나는 확인 못하고 

안부로 내려가니 잡모기 길을 가로막고   지금까지는 등로가 너무 좋았는데  이제부터는 잡목이 

애를 먹인다.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니 188.4m봉을 만나고 

188.4m봉을 지나 묘지를 만나고 잡목을 헤치고가다 좌측으로 진행하니 포장임도가 나오고 

왕무덤재에 도착한다,

왕고개 주유소가 있고 진도읍과 사천저수지로 연결되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높이 90m이다. 고려 후기 삼별초의 난 때 영영공이 아들들에게 자신의 친형인 왕온을 구해올 것을 지시했다. 그는 왕온이 삼별초의 인질로 잡혀가 타의로 왕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왕온은 삼별초가 몽골 및 고려 연합군과 맞서 싸울 때 이 고개를 넘어 물러나는 과정에서 홍다구의 칼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이 고개 동쪽 200m 거리의 산기슭에 그의 묘가 있다. 왕무덤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까닭도 이 묘 때문이다.

해발 90m의 이 고갯길은 객사한 고려 삼별초 왕온이 묻혀 있는 곳이라 귀신이 잘 나타난다 하여 혼자서 걷기를 꺼렸다. 고갯마루에 암반이 있어서 지나가는 길손들은 나뭇가지나 돌멩이를 던져 한 많은 왕에게 인기척을 했는데, 성황당 풍습이 겹쳤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고개 밑 마을은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사천저수지 공사장 한산인부로 들어와 살면서 개촌하여 한때 수용소라 했으나, 지금은 삼별초군이 진을 쳤다는 의미로 진설리라 한다.

진도읍에서 4㎞ 거리에 있다. 이 고개를 넘으면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으로 통한다. 금갑만호진이나 의신면 소재지인 돈지로 갈 수 있다. 회동 신비의 바닷길로도 이어진다.

왕무덤재에서 진도지맥 1구간을 마치고 택시를 이용하여 진도읍 스타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봐서 2구간을 하려 하였으나 포기하고 1구간으로 마친다   다음을 기약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