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두승지맥 1 구간을 마치고 연속으로 2구간을 시작한다. 어제의 피로와 약간의 과음탓인지 컨디션이 별로다.
두승산 오르는데 엄청 힘이 들고 돌짐재를 지나 204.6m봉오름길이 힘이든다
천치재에서 89.2m삼각점봉까지도 까칠, 자라고개에서 천태산까지도 힘이든다.
천태산에서 내려와서는 비산비야지대고 도로를 한없이 따른다 온도는 30도까지 올라 초여름날씨로 엄청 덥고 물만 들이킨다
백산에서 두승지맥을 마치기로 한다. 현호마을까지 가야하지만 날씨가 무척 덥고 도로따라가는 길이라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두승 지맥 2구간 덧고개에서 두승산 ~ 천태산 ~ 백산까지
일시 : 2026년 05월 14일
날씨 : 오전 운무로 매우 흐림 10시갬 30도까지의 무더위
소재지 : 전북 정읍군 고부면, 덕천면, 소성면, 이평면, 영원면, 부안군 백산면일대
행정 : 정읍시 ~ 덧고개(05:30, 전북 정읍시 고부면 만수리 699-1) ) ~ 끝봉(339.1m, 06:17) ~ 두승산(445.1m, 06:38) ~
돌짐재(07:36) ~ 204.6m봉(08:00) ~ 천치재(08:21) ~ 146.3m삼각점봉(08:38) ~ 천치(184m봉, 08:50) ~ 자라고개(09:13)
~ 성황당고개(09:27) ~ 석실묘(09:35) ~ 사라고개(09:57) ~ 천태산(197.2m, 10:05) ~ 736번 도로(10:30) ~ 48m봉(10:41) ~
청량리도로(10:45) ~ 정애교회(11:17) ~ 거룡리(12:19) ~ 백산(48.3m,12:30) 뱃산성입구(12:34) ~ 부안 ~ 정읍 ~ 덧고개 ~
창원
산행거리 : gps 18.77km 오룩스맵기준 , 두승지맥 총거리 : 20.08km + 18.77km =38.85km 접속, 알바 1.95km
현재까지의 지맥 총 도상거리 : 2585.86km + 37.6m = 2623.46km
산행소요시간 : 07시간 04분
동행 : 나홀로
트랙



사진및 일지
정읍시내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덧고개로 향한다 ,

덧고개 안개와 운무가 잔뜩 끼여 조망은 엉망이라 생각하고

덕소개삼거리에 주차를 하고 두승지맥 2구간을 시작한다.

덧고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고 삼거리에서 우방향 다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좌측 축사옆으로 도로따라

거대한 태양광단지 사이로 진행하고

태양광 단지끝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철망 끝이 나오고

군부대 철망 좌측으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두승산 끝봉이 보이고 우측으로 두승산이 보인다

군부대철조망을 우측으로 보내고 벌목지를 오르고

날씨는 그래도 태양은 떠오른다

우측으로 동죽산과 이 보이고


벌목지를 지나 숲으로

삼거리

등로좋고

너덜지대를 지나면 급경사가 시작된다

급경사를 힘들게 올라 끝봉과 두승산 갈림길 사거리 안부에 도착하고
배낭을 벗어놓고 왼쪽에 있는 끝봉을 다녀온다.



끝봉(339.1m) 팔각정이 있고 원지맥은 이 끝봉으로 바로 오르게 되어 있으나 등로 자체가 없는듯하다
두승사 관음사가는 등로도 있고



정자에서 잠시 조망을 해보지만 운무만 가득하고 저 멀리 영산기맥의 내장산, 백암산, 입암산, 방장산라인이 희미하다


다시 돌아와 두승산으로 삿갓쓴듯한 바위도 나오고


두승산에 오른다, 정상에는 조망데크가 정상을 대신하여 있고
두승산은 표고 443미터로서 정읍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두승산(斗升山, 444m)<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흑암동 산 67>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읍시 고부, 소성, 덕천, 이평, 영원 등 5개 면에 걸쳐있는 해발 443m의 호남의 명산이다.옛날에는 도순산(都順山), 영주산(瀛州山)으로 불린 두승산은 부안의 변산(邊山), 고창의 방장산(方丈山)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으로 꼽히는 명산이다.
암석으로 된 이 산의 줄기는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뻗 어있고, 북동쪽은 가파르며 북쪽으로는 천태산(天台山)과 이어지고 있다. 멀리서 이 산을 보면 거북 형상과 너무 흡사하다.영주읍지(瀛州邑誌)에 의하면 산에 9개의 봉우리가 있고 석두(石斗)와 석승(石升)이 있어 산명(山名)을 두승산이라 했다고 하는데 석두와 석승은 1883년 경 나무꾼의 장난으로 없어져 버렸다. 남동쪽의 선인봉(仙人峯)은 옛날엔 귀인봉(貴人峯) 이라 불렀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선인봉 아래가 좋은 터라 하여 여러지역 사람 들이 이사를 와 살고있다.
산세(山勢)가 비교적 단조롭고 울창한 자연림(自然林)은 없지만 작은 계곡과 바위틈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새소리·물소리와 어울려 산의 정취에 호젓이 젖어들게 한다. 오르다 보면 고인돌을 채석한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이 눈에 띄고, 절에서 쓰던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물통도 볼 수 있다. 절터 아래쪽에는 5,000평 정도의 작설차 밭이 조성되어 자생하고 있다. 차는 옛날 스님들이 절에서 음용 했던 것인 만큼 분명 인근에 절이 있었을 것이다. 차는 예전에 스님들이 마셨 던 만큼 이것을 마시면 양기가 감퇴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그러나 항암효과는 물론 노화 방지에 좋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현대인들에 게 크게 각광을 받고있다.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인상적이다.

옛 삼각점이 있던 자리인듯하나 없어졌다



두승산 정상모습

보문사 유선사 삼거리




또하나의 전망데크가 나오고

저멀리 운무뒤로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라인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안테나가 있는 441m봉


안테나봉을 지나 약 420m무명봉을 10여m지나 우측 산죽길로 들어선다.

산죽길은 경사가 심하고 위험해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산죽지대를 내려가다 우측 능선으로 붙어 내려간다.

임도를 건너고


산죽지대를 마나 진행하면

돌짐재 생태이동통로를 만나 건너고
돌짐재 생태이동통로는 약간 좁은편이고 잡목이 많다

반바지님의 돌짐재 코팅지


건물을 만나 좌측으로 펜스따라

펜스 마지막안부

쓰러진 나무와 둥근 바위가 있는 204.6m봉 지맥은 우측으로 90도 꺽이고


철탑을 지나

천치재내려서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빙돌아 내려간다. 너무 많이 돌아 내려갔다.

천태산이 보이고

전신주 옆으로 내려왔어야 하는데,,,,

천치재를 넘어 좌측산으로 들어선다.

요리로 들어서 올라간다.


146.3m삼각점 정읍 446

준희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커다란 바위도 지나고

184m봉 갈림길에 반바지님의 뛰동산이란 코팅지가 있다. 갈림길에 왜 있는지 의문,,,,

고사리 지대도 지나고

이봉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갔어야 하는데 조금 직진하여 알바

묘지를 만나고

풀밭으로 내려선다

자라고개로 내려서고

자라고개
자라고개는 전북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산19-3에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성마을을 비롯하여 고부면 장문리와 덕천면 도계리 사람들이 자라고개라고 부르는 산길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옛날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성마을 조그마한 방죽에 자라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자라는 좁은 못에서만 사는 것이 싫증이 나고 인간들의 세상이 그리워져서 방죽을 나왔다. 거북도 한번 만나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인간들이 자신의 부드러운 배갑(背甲)과 부드러운 피부, 하얀 색깔에 담흑색의 무늬가 아름다운 자신의 복갑(腹甲)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방죽 밖으로 나와서 보니 세상은 너무 아름다웠다. 산부터 한번 올라가 보려고 산을 향하여 기어가고 있는데, 자신을 잡으려는 인간을 만나게 되었다. 자라는 혼비백산하여 숲속으로 몸을 숨겼지만 굶주려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자라는 밤을 틈타 고향인 방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숲속을 빠져 나왔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방죽을 눈앞에 두고 숨을 거두었다. 어느 날 새벽, 한 농부가 죽어 있는 자라를 보고 가여워서 산속에 묻어 주었는데 험하였던 산길이 자라 등과 같은 모양의 완만한 언덕길로 변하였다.
「자라고개」는 ‘자라’라는 동물을 의인화한 동물담이면서 ‘자라고개’라는 지명의 유래담이다.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탑성마을을 비롯하여 고부면 장문리와 덕천면 도계리관련항목 보기 사람들은, 험준한 산속에 자라 등처럼 완만한 언덕길이 생긴 것은 자라가 죽어서 인간에게 남긴 선물이며, 동시에 자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신의 조화였다고 믿었다. 「자라고개」는 지역 주민들의 의식 세계가 반영되어, 험준한 고갯마루에 놓인 완만한 길과 근처에 있는 방죽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서사이다. 이야기가 연결되고 확장되어 가는 데 주변 지형지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설화이다.

자라고개에서 곧바로 오를 길이 없어 도로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축사건물옆으로 오른다
밭이 있는데 직각으로 개간해놓아 오를수 없다.
이곳으로 올라 좌측으로 가면 등로가 나온다.

고사리가 덮힌 묘도 지나고

85.4m봉인듯 한데 아무표식도 없다

성화당고개
동학농민운동이 있었을 당시 농민군이 이 고개를 통해 진군했다고 하며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돌을 쌓아 소원을 빌던 서낭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묘지를 만나니 좌측으로 조망이 트인다.

변산지맥, 영산기맥의 방장산이 보인다.

웬 뜽금없는 돌 계단이 나온다

석실묘가 있다 알고보니 은선리 고분군 탐방로네요

전북 정읍시 영원면 일대는 백제 사비기 오방성 가운데 중방성이 자리한 고사부리성의 인접지역으로, 주변에는 백제시대의 고분 약 270여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조사된 은선리고분을 통해 횡혈식석실묘 유형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유형은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우측에 연도를 개설한 터널식 형태로 그 시기는 5세기말에서 6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제2유형은 역시 장방형의 평면형태에, 중앙에 연도를 개설한 단면 육각형 형태의 고임식으로 벽체는 모두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마지막 제3유형은 장방형의 평면형태에 천장은 평천장(수평식)으로 7세기 초에 등장하여 백제 멸망기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고분 대다수가 백제 중앙 묘제인 횡혈식석실묘인 점, 그 축조시기가 사비시기인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그 축조집단은 중방성(고사부리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부 저평한 구릉에 분포하고 있는 운학리 및 지사리고분군은 입지 지형과 분포 상태 등으로 보아 마한시기의 분구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세부적인 현황과 성격은 알 수 없다. 다만, 운학리 C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제투조과판은 진식대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공반 출토된 규형판금구은 성시구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출토유물로 볼 때 그 피장자는 당시 이 일대에서 성장한 최고 수장층의 무덤으로 판단된다. 종합해보면 영원면 일대에는 경제력과 교통로를 바탕으로 분구묘를 축조한 재지세력이 있었으며, 영원면 일대에 축조된 수 백 여기의 횡혈식석실묘는 이들 재지세력이 백제로 편입 혹은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주인공으로 판단된다.



163.3m봉



이정목이 있다, 고분군, 무제봉 , 태산사이정목


사라고개(자라고개)

자라고개뒤로 천태산이 우뚝하다.

빡세게 올라 천태산(197.2m)에 도착한다.

천태산 [ 天台山 ]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와 이평면 산매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천태산(天台山)의 지명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은선리, 운학리, 도계리, 영원(瀛原), 갈선 등의 지명과 천태산 주변에 널려 있는 백제 시대 굴식 돌방 무덤군 등으로 미루어 백제의 신선 사상과 중국의 도교 성지 천태산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태산 정상에 운동 기구와 표고점이 있다.
천태산은 중생대 쥐라기 백운모-흑운모 화강암에 해당한다. 두승지맥으로 두승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천태산으로 이어진다. 천태산에서 발원한 하천은 덕천천으로 흘러 고부천을 통하여 동진강으로 합류한다. 서쪽으로 구릉 지대와 제4기 충적층의 넓은 평야가 분포한다. 채석장으로 인하여 천태산 일부가 훼손되어 있다.

조망데크로 내려간다

운동기구에 천태산 산패를 걸어놓앗다.


171.3m봉


경사가 급한데 다행히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좋은 등로를 따라가다 좌측 숲으로 들어서고

어지러운 등로를 따라간다


가다보니 절벽이 나오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등로가 어지러워 우측으로 내려섰는데 인삼밭이다. 주인이 봤으면 노발대발했을거다,,,,
지맥은 좌측으로 계속 내려가야 한다
인삼밭으로 내려서 비도는 형상이 되어 버렸다.

도로에 내려서

요기로 내려와야 하는데

여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고

뒤돌아본 171.3m봉

임도를 따르고

소먹일 초지가 엄청 넓다

농가를 지나 이런 곳으로 진행하고

84m봉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 내려갔다 길이 없어 고생개고생 직진하면 안되고


묘지로 내려서

넓은 임도를 따르고 48m봉에서 직진하면 앞의 건물로 인해 나갈수 없는듯하다

농촌 배수장


도로 우측으로 배수로가 있는데 엄청난 농업용수가 흐르고 있다.

이런 소나무도

정애교회도 지나고
날이 30도까지 올라 습도도 많고 발바닥도 열이 난다. 그늘만 있으면 앉아 물을 들이키고 더위에 완전 허덕인다. 또 어제 저녁에 약주가 좀 과한것도 있는듯하고,,,,


부안 이평삼거리에서 이평으로


다시 삼거리를 만나 좌측 거령교회로


좌측으로 정읍 신태인 자동차 전용도로가 지나고 있고

우측으로 백산이 보이고

거룡리에 도착하여 우측으로 도로따라
주민들에 물어보니 좌측(산내)으로 가면 등로가 거의 없다한다


삼거리로 향하고

백산성이 보이는 곳에서 백산으로 오른다.

백산산성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백산에 있는 해발 47.4m의 백산(白山) 정상부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환호 시설을 한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부안 백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없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천지기(天智紀)」에 “부여풍(扶餘豊)이 백촌(白村)에 가서 일본의 구원군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백촌을 ‘백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이곳은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혁명(東學農民革命) 당시 동학군이 처음으로 혁명의 기치(旗幟)를 들었던 백산기포(白山起泡)의 유적으로, 동학군이 전략상 공수(攻守)에 유리한 백산에 본진(本陣)을 옮겨 사용하였다. 당시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농민이 일어나면 흰 옷으로 덮히고, 앉으면 손에 쥔 죽창이 가득하다고 하여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1965년 지표 조사에서는 상성과 외성의 형태를 한 토성으로 보고되면서 민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백제 시대 토기 편 등의 유물이 채집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해 토성보다는 환호와 같은 방어 시설을 한 산성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부안 백산성은 동학 농민 혁명의 ‘백산 기포’ 현장으로 역사성이 있는 전적지로 인정받아 1998년 9월 17일에 사적 제409호로 지정된 곳이면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청동기 시대의 주혈,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환호와 주거지 등이 확인된 산성 유적이다. 이처럼 선사 시대부터 역사 시대까지 누누이 사람들이 살면서 남긴 생활 유적과 방어 유적이 복합된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백산(49m)에 도착하고

백산 삼각점

백산 정자.

도로따라 현호마을 까지 가야 하지만 도로따라 가야하고 날씨가 너무 더워 이곳에서 두승지맥을 마무리한다.
이곳에서 캔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부안가는 버스를 타고 부안으로 부안에서 정읍으로 가 덧고개까지 택시를 이용한다
택시비 : 8,600원
창원으로 귀가